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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루브르(Louvre) : 궁전에서 박물관으로

by 비키퍼 202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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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에서 박물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인 루브르(Louvre)는 여러 건물로 이뤄져 있다. 루브르는 그 건물 자체로도 뛰어난 건축 작품으로 8세기에 걸쳐 형성된 이 작품은 프랑스의 왕정의 역동적인 사건들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루브르는 중세의 성으로 그 역사를 시작하였다. 12세기 말 필립 어거스트(1165-1223)가 남서쪽 모퉁이(오늘날 꾸르 까레에 해당하는 부분)에 탑과 두 개의 건축물로 이뤄진 원형 성곽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성곽은 당시 영국군으로부터 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뤼파라’라고 불리던 장소에 세워졌기에 오늘날 ‘루브르’의 기원이 된 것이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당시 이 건물은 감옥, 병기창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며, 왕실 금고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고 한다.

 

샤를 5세(1338-1380)가 파리 주변에 거대한 성곽을 건설하고 자신의 거처를 루브르로 지정하기 전까지 왕들은 여러 성을 옮겨 다니며 거주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이후 루브르는 개수를 통해 편안하고 화려한 장소로 탈바꿈한다.

 

이때 본채들은 점점 높아지고 새로운 본채들은 화려한 장식, 벽화, 유리창으로 탁 트인 공간, 대형 나선형 계단 등 오늘날 잘 알려진 궁정으로서 루브르의 화려한 모습을 갖춰가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아름다운 거처에는 보석, 귀중품 및 희귀한 서적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를 통해 왕의 권력은 더욱더 고양되고 확고해져 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샤를 6세 이후의 폭정과 내전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국과의 백년전쟁(1337-1453)으로 이어진 수십 년 간의 혼란기 왕들은 파리를 떠나 루아르강 주변이나 일 드 프랑스(프랑스 중북부 지역)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루브르는 버려진 성이 되었다.

 

Louvre Museum
루브르

 

루브르의 르네상스

이후 루브르는 16세기 이후 여러 건축가에 의해 보완되고 증축되면서 새로운 면모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오늘날 유명한 튈르리 정원의 ‘튈르리’라는 이름은 루브르 박물관 서쪽에 위치했던 작업장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앙리 4세(1589-1610)는 짧은 재위 동안 루브르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파리를 프랑스의 정치, 지리적 중심지로 만들고 싶었던 그는 루브르와 튈르리를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는 강변의 갤러리 등 여러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1610년 암살되고 만다. 대신 그의 아들 루이 13세(1610-1643)가 그 프로젝트를 계승하여 루이 14세(1643-1715) 시기까지 이어졌다. 그런데도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에 더욱더 애착을 갖게 되어 결국 1678년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 궁전에 항구적 거처를 마련한다.

 

이후 수십 년 간 이어진 정치적 불안정(프랑스 혁명 등)으로 루브르의 대 건축공사는 그다지 탄력을 받지 못하였다. 나폴레옹 1세도 그다지 많은 공사를 추진하지 못했다. 이후 50여년이 더 흘러서야 나폴레옹 3세의 왕정복고와 그에 따른 즉위와 튈르리 궁에의 정착으로 오늘날의 위엄 있고 입체감 있는 루브르가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코뮌’ 파리 혁명 자치정부가 들어서고 1870년 보불전쟁(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에스파냐 국왕의 선출 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 발생하면서 튈르리 궁전이 화재로 소실되고 만다. 튈르리 궁전의 복원은 끝내 이뤄지지 못하고 1883년 허물어지고 건물의 끝부분만 남겨져 그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20세기의 루브르

20세기 이후 루브르는 계속 수집되는 예술작품을 보관하고 부각 시키는 용도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프로젝트로 정점에 달했다고 한다. 이 당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가 지은 유리 피라미드가 현재까지 루브르를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루브르의 대표적 소장품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밀로의 비너스’이다. 이는 그리스 고미술의 백미로 1821년 그리스, 로마, 이집트 그리고 중동 고미술품의 쇄도기에 들어온 것이다. 아 때 밀려 들어오는 소장품의 소장을 위해 루브르를 대대적으로 개보수 및 확장했다고 한다. 이집트관은 1826년에, ‘코르사바드의 날개 달린 황소’의 아시리아관은 1847년에 만들어졌다. 이후 기증 및 구입으로 추가되는 소장품들의 수량 증가에 맞춰 부별로 전시하는 체계가 도입되었다.

현재는 약 3만 점의 작품들이 일정 기간 교대로 전시되고 있다. 각 부는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및 아메리카관 들과 같이 각각 본 루브르 소장품 가이드에 장별로 언급된 고유의 역사 그 자체로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다.

현재 루브르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소장품의 수와 풍부함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루브르는 그 자체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훌륭한 작품이다. 한 걸음씩 이 전시실에서 다른 전시실로 옮겨가면 몇 세기를 뛰어넘게 되고 전체 문명을 경험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시기를 종합적으로 넓은 시야로 조망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소장품들을 역사적, 예술적 맥락 속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개별 작가의 개성을 더욱더 또렷하게 부각해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

 

루브르를 방문함으로써 관람객은 문명과 예술의 장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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